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회 오물 투척 사건 (문단 편집) == 사건 발생 == 정부와 대기업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거센 와중에 국회 질의 마지막 날인 9월 22일 결국 무소속 국회의원이었던 김두한이 일을 저질렀다. 당시 김두한은 [[한국독립당 내란 음모 사건]]이라는 조작 사건에 휘말렸다가 겨우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독립당(1963년)|한국독립당]]은 완전히 와해되어 무소속인 상태였다. 즉, 울분이 쌓일 만큼 쌓여 있던 상태였다. 실제로 김두한은 발언 중에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서울구치소|서대문형무소]]에서 영하 20도의 날씨에 콩밥을 먹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게다가 김두한이라는 인물의 원래 성격 자체가... 그는 이미 1954년에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국세청장|사세청장]]을 폭행한 것은 물론 잠깐 자유당에 몸담았던 시절에도 같은 당 의원인 [[장경근]]에게 손찌검을 한 전과도 있었던 정치계의 유명한 트러블메이커였다. 사실 김두한의 태도는 발언 전부터 매우 험악했다고 전해졌다. [[이효상]]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을 대신해서 사회를 봤던 [[이상철(1893)|이상철]] [[대한민국 국회부의장|국회부의장]]이 김두한의 발언 순서를 불리하게 조정하자 김두한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당신 [[뚝배기(유행어)|이거 한번 부서지는 거]] 보려고 그래요?"''' 라면서 협박했고 "'''그 따위로 당신 하면 좋지 않아! 노인이니까[* 이상철 부의장은 [[1893년]]생으로 이때 이미 73세의 노인이었다. 73세는 21세기에도 적지 않은 나이에 속하는데 당시의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나이였다. 당장 김두한이 55세에 죽었다.] 그냥 두지, [[장경순(1922)|장 부의장]]같이 [[유도]]깨나 쓰면 날릴 테야!'''" 하고 소리쳤다고 한다. 장경순은 실제로 유도를 잘 했고 말년에는 유도협회에서 명예 10단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장경순의 나이는 국회부의장치고는 아주 젊은 나이인 44세에 불과했고 김두한보다 나이가 4살 어려서 서로 몸싸움이 났으면 사건이 더 커질 뻔했다. 실제로 사세청장을 폭행한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여담으로 이때 김두한에게 폭행을 당한 김만기 당시 사세청장은 사세청장 지위를 이용해 축적한 재산으로 나중에 [[대성학원]]을 설립했다.] 김두한의 이런 발언들은 매우 심상치 않게 여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본회의에서 민주공화당 [[이만섭]], 신민당 [[김대중]]의 질의가 끝나자 김두한의 질의가 시작됐는데 일단 김두한은 “[[서울교동초등학교|교동공립보통학교]] 3년 동안에 2년을 낙제하고 1년밖에 못 다녀 기초상식이 부족하여 말을 (잘)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할 줄 모르는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김두한 문서에도 설명되어 있고 당시 국회 본회의 기록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 있듯이 김두한은 실제로 정규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깡패 출신인 건 사실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굉장한 달변가'''[* "노변야화- 김두한편"의 진행자 [[권오기]]라든지 [[김영삼]] 전 대통령 등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 김두한에 대해 "글을 못 읽기는 해도 의외로 똑똑하며 말재주가 좋았다" 같은 증언을 남긴 바 있다. 다만 연설 전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달변가의 발언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문장에 비문이 없고 내용이 깔끔함은 물론, 이치에 맞으며 듣는 데도 불편함이 없는 정석적인 연설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라면서, 특히 깡패짓을 하면서 입을 많이 털어서 그런지 학력에 비해 언변이 좋았던 것 자체는 사실이다. 어쨌든 듣는 사람의 흥미를 돋우고 자극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말을 골라서 하는 데는 확실히 일가견이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봐야 한다. 해당 연설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내용을 조리있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논객 타입의 달변가라기보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옆으로 새나가고 사설이 길고 논리적으로도 오류가 많지만 그래도 듣기에는 재미있고 듣다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는 '입담이 좋은 재담가' 타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서 듣기 좋게 말을 하지는 않지만 듣는 맛이 좋았다는 것이다.]'''로 유명할 정도로 말솜씨가 매우 좋았던 편이었다.''' 결국 이 때부터 그의 장광설이 시작됐다. * 아래 내용의 원문은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40-010.do#none|국회 회의록 검색 시스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 6대 국회회의록-제58회-9월 22일 본회의 기록을 클릭하여 PDF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보면 된다. 김두한의 발언 내용은 24페이지 가장 아래쪽 줄부터 나온다. >○부의장 이상철: 다음은 김두한 의원, 발언하세요. > >○김두한 의원: 이게 다른 게 아니고, 국민이 오늘 총포탄을 내려 친다고 하는 중요한 역사적 단계에서 조금 이따가 설명 하겠습니다. 내가 그 전에도 여러분에게 말씀을 했지마는 나는 어떻게 환경이 나빠서 [[서울교동초등학교|교동공립보통학교]] 3년 동안 2년을 낙제해 1학년입니다. 이래서 기본적인 기초 상식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할 줄 모르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이 중요한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나는 '[[사카모토|사까모도]]'라는 놈이 밀수를 했다.[* 1966년 8월에 터졌던 사카모토방적(阪本紡織)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52906&cid=40942&categoryId=32092|테트론]] ([[폴리에스테르]] 옷감) 밀수 사건을 뜻하는 것.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6082600209203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6-08-26&officeId=00020&pageNo=3&printNo=13801&publishType=00020|당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608220032920701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6-08-22&officeId=00032&pageNo=7&printNo=6416&publishType=00020|기사들]] 사카모토방적은 이후 [[방림(기업)|방림]]으로 사명을 바꾸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49899&cid=43167&categoryId=43167|현재까지 이어져 있다]].] 또 [[이병철]]이 [[롯데정밀화학|한국비료]]가 밀수를 했다. 이것이 중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그 차원을 달리하려고 생각합니다. 왜냐, 모든 것은 벽돌짝이 하나에서부터 올라가서 '[[뉴욕]]'에 제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엠파이어 빌딩]]'이 되고, [[태평양]]과 [[대서양]]도 산골짜기에서 물이 흘러가 가지고 위대한 바다를 이룬 것과 마찬가지로, 범죄를 이룰 때는 그 범죄의 요소에 대하여는 그가 저지를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조성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에 있는 국회에서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현 내각에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 국회라고 하는 곳은 국민의 복리, 민복을 위하는 복지사회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국회의원의 사명이고 행정부의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부정과 불의(不義)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합법화시키는 곳이 만약에 국회라고 할 때 이 국회는 우리 국민이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 아까 [[김대중]] 의원이 말씀한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께서 장시간을 잘 들었으니 나는 그 이상 더 얘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 >본 의원은 이번에 [[1965년 재보궐선거#s-3.1.4|국회의원에 대한 보궐선거]]로 당선되자마자 [[서울구치소|서대문 형무소]]로 들어가 12월 눈보라 치는 영하 20도에서 한 달동안 콩밥을 씹다 나왔습니다. 거기는 내가 늘 별장 삼아서 들어가는 곳이니까 뭐 한 사십 몇 번 들어갔으니까 그것은 상관은 없고, '나 또 들어갈 심정이니까...'라는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냉정히 여기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이 수립되어서 [[이승만 정부|이승만 정권]]이 [[발췌 개헌|독재]]와 [[사사오입 개헌|부정과]] [[3.15 부정선거|부패를 했기 때문에]] [[장면 내각|장면 정권]]은 전체 국민에게 고도의 자유민주주의를 제창했던 것입니다. [[내각책임제]]의 정책을 하나의 선거공약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좀 그것이 지나치게 정도를... 사회 질서를 문란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국군이 60만이 있고 경찰이 7만 이상이 있고, 이 나라에 적어도 대한민국을 수립하는 수만의 애국청년이 있는데 하룻밤 사이에 대한민국이 공산당으로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수립을 위해서, 내 목 뒤에는 한방의 탄알의 흔적이 있고, [[미군정|맥아더 사령부]]에 들어가가지고 사형을 받아 오끼나와[* [[오키나와]]가 올바른 표현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최대한 그대로 받아적는 구술의 특성 상 오끼나와로 표기한다.] 형무소에 가 있을 때 대한민국이 수립되어서 그 영광된 시간에 나는 대사령[* 큰 규모의 사면.]으로 석방되었던 사람입니다. > >내가 사형받았던 제1심에서 [[존 리드 하지|하지 중장]]에 대하여는, 24군사령부 군사위원회에서 재판받아서 제 2심에 맥아더 사령부로 넘어갔을 때, 중앙청 회의실에서 48일 동안의 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 >그 이유는 어째서 받았느냐,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 대하여는 [[대서양 헌장]]에는 '코리아'는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준다고 그랬다. 그 적당한 시기는 [[소련]]연방의[* 소련이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준말이므로 [[겹말]]이 되기 때문에 어법상 맞지 않는 말이다.] 식민지인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괴뢰집단이 남한 전 지역을 적화시켜 가지고 역사와 전통과 [[민족자결주의|민족자결원칙]]을 파괴해 가며 소련연방을 주창하는 것이 적당한 시기인가, [[일제강점기|왜정]] 말엽에서부터 8월 15일까지 이 나라의 자주와 독립을 위하여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의거해서 백만이 국내, 국외, 해외에 있어서 순국선열이 이 나라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서 투쟁하는 고결한 민족자결원칙을... 자주독립국가는 남북을 통일하는 대한민국에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 적당한 시기인가 하는, 이러한 중대한 하나의 우리 국내에는 설전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 >반탁과 찬탁을 비롯해가지고, 전국이 물 끓었을 때 미소공동위에서 발표했지만, 조선공산당은 [[남로당]]으로 변해가지고 120만에 대한 것을 전 세계에 공포했습니다. 남로당에 대하여는 솔하의 노동조합은 총평(總評)이고, 혁명조직은 민애청(民愛靑)이고, 부녀조직은 부녀동맹이고 [[인민위원회]]가 있고, 학생동맹이 있고, [[국군준비대]]의 군사조직은 [[여운형]] 계통으로 국군준비대라는 것이 있고, 예술가 동맹과 문학가 동맹이 이것이 하나의 연합체로 해가지고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인민해방전선을 폈던 것입니다. > >물론 총과 칼을 주고 대포알을 주고 대서양에 갖다버리는 잉여물자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면 훈장을 달아준다는 그 전쟁은 누구나 할수 있지만 [[영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려 할 때, [[조지 워싱턴]]이 분개해 [[미국 독립 전쟁|자유 우방은 일치단결해 영국의 세력을 물리치고]] [[미국|아메리카 합중국]]을 오늘날 같은 위대한 국가로 번영된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순국선열에 대하여는 위대한 피와 모든 희생에 대하여는 고결한 그 분들의 정신이 헛되지 않고 미래에 우리가 천년의 위대한 전승의 역사를 세우기 위해서 김두한이는 배우지 못했지마는 2년 8개월 동안이라는 것을 [[공산당]]에게 테러, [[학살]], [[방화]], [[납치]], 무자비한 하나의 공산당 이상의 투쟁을 해가면서 최후에는 15호에 의해서 하지 중장 24군의 CIC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나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서 한 것도 아니고,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이 국가와 이 민족을 위해서 싸울 의무가 있고, 권리가 있으며, 다만 미약하나마도 이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11년 전쟁에 오스코워 전쟁과 샌드코워, 하바로스코, [[청산리 전투|청산리 전쟁]]에 [[일본군|일본놈]]이 2만 8천여 명이 전사를 했습니다. > >[[베트남 전쟁|월남전선]]에서 지금 3, 4년 동안에 막대한 5만 달러를 퍼뜨리고 [[베트콩]]을 아직까지도 만 명 이상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다이쇼 시대|대정시절]]에는 전일본병력은 [[국제연맹]]헌장에 의거해서 불과 육군력은 5만밖에 안 되었습니다. 남만사단과 평양사단은 전멸되고 조선군사령부까지 하고 나중에 그것이 모자라서 [[러시아 혁명|노서아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서 시베리아에 출병하였던 117연대까지 포화해서 백두산 산맥에서 전멸했습니다. >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김좌진|그러한 아버님]]을 두었기 때문에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의 아들이라고 하는 일본놈 핍박정치 밑에서 무지한 탄압과 그 무지한 멸시 가운데에서 공부도 못했고 불쌍한 장천교다리에서 나는 불쌍한 고아로 자랐습니다. > >그러나 나에게는 위대한 숭고의 피가 흘렀고 위대한 그 분에 대한 사업을 나는 완수해야겠으며, 나의 아버님의 선배와 동지가 되시는 그 분에 대하여는 백만 이상의 순국선열에 대하여는 그 영령에 헛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값없는 생명이나마라도 이 나라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값있게 바쳤던 것입니다. 나는 공산당하고 싸울 때 어떠한 명예를 앞세우든지 어떠한 하나의 부귀와 영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 >나는 오늘날과 같은 반토막이나마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러분들이 번영된 아름다운 세계의 어느 나라든지 [[덴마크]], [[노르웨이]], [[스위스]], [[스웨덴]]과 지지 않는 이상적인 복지사회국가를 건설해서 우리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균등사회국가를 실현하는 헌법 전문이 있고 3.1정신을 기하여... 이것은 무슨 소리냐. '혁명정신을 기한다.' '대한임시정부가 3.1독립운동을 계승한다'고 하는 전문에 대한 명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 >이래서 [[사형]]을 당했다가 나와서 보니, 역사와 국가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당연히 독립국가가 되면 과거에 친일파 민족 반역자하는 것은 일당의 하나가 되어 숙청은 공산당같이 잔인하다 하더라도 정치나 경제에 대한 참여권을 주지 말아야 된다. 다만, 시기적으로 15년이나 20년이라는 기간만 두어야 된다 이것이에요. > >내가 [[이승만]] 전 대통령은... 내가 과거에 이승만 대통령은 무자비하게 처참하게 최후에는 희생을 시켰지만, 그 분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나는 일체 그 분에게 대한 함구무언입니다. > >나에게는 투지가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남에게 굴복해 본 일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는 이 순간에는 가장 중대한 시간입니다.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 >우리가 [[6.25 전쟁|6.25 사변]]이 나기 전에는 [[미국]]의 원조를 정식적으로 못 받았습니다. 6.25 사변이 일어나가지고 휴전협정서에 협정조인을 하려고 [[존 포스터 덜레스|덜레스]] [[국무장관]]이...대통령고문이 왔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거절을 했습니다. 너희가 당신이 한국전선에 [[삼팔선|38선]]하고 일본에 가서 미국에 채 도착도 하기 전에 한국은 맥아더 국방라인 선에서 제거했다고 하는 한마디로 말미암아 완전히 전쟁준비를 하고 있던 공산당이 침해해서 우리나라는 독립하자마자 초토화가 되었고 이 모양으로 초토화를 해 놓고 너희 마음대로 수백만의 인민과 재산과 젊은 학도들을 청년 학생들을 죽여 놓고 너희 마음대로 휴전을 해! 나는 못해! 그리고 비행기 타고 달려 왔습니다. > >그러나 대통령하고 단둘이 왔습니다. "복구를 다 해줄 것이냐." "얼마냐." "3억 8천 만 달러를 주어야 되겠다." 그 다음에 "매년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 "오케이." 하고 3억 8천 만 달러를 얻었다 이것입니다. 아 [[정전 협정(6.25 전쟁)|휴전협정서]]에 [[국새|국장]]을 찍어줘! 내가 당신더러 언제 휴전협정서에 조건이 있어서! 국장을 찍어 준다고 돈을 주었나. 파괴된 것을 당신이 건설 해 놓는다고 이것은 당신이 가지고 오지 않았는가? 그것은 나는 승낙 못해! 휴전 협정서는 당신의 자유지만 나로서는 대통령과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못 해! 이래서 휴전협정서에는 [[외교부장관|외무부장관]][* 여기서 말하는 외무부장관이 누구인지는 미상이지만 정진 협정 당시 외무부장관은 [[변영태]], 이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는 [[이동원]]이었다. 이동원 장관의 전임자가 바로 [[정일권]]이었는데, 정일권은 당시 이미 총리와 외무부장관을 겸임하였다.]에게 물어 보았지만 이승만 박사의 서명이 없고 그대로 오늘날까지 온 것입니다.[* 사실 이건 김두한이 잘 모르고 한 소리다. 군 대 군 협정이라 애초에 국장을 찍을 일이 없었다. 명목상 북한의 국가원수였던 [[김두봉]]도 김일성이 서명하는 것을 처다보기만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 >그러면 거기까지는 좋았다 이것입니다. 우리가 38선이 막혀 놓으면 지정학적과 전략적 위치를 보았을 때, 우리가 [[베트남 공화국|월남]]보다도 좋은 위치에 처해 있는가. 어떻게 처해 있는가. 월남은 [[베트남 통일|적화]]가 되면 [[캄보디아]]나 [[라오스]]같은 중립지대를 지나서 자유 [[태국|타일랜드]]로 도망갈수가 있지만, 여기는 적화되면 동해바다와 서해바다 현해탄으로 나가고... 그 후에 과연 지정학적 전략적 위치로 한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 > >여러분 우리는 오늘 현실에 대하여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후배를 위해서 우리가 지금 여러분들은 자녀교육을 하고 있지만, 과거 우리 선열들이 총 한번 못 쏘고 일본놈한테 이 나라의 강토를 침해해 가지고 반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가지고 이름 성명을 못 부르고 눈물겨운... > >오늘날 반토막이라도 독립국가가 되어서 우리나라 사람으로다가 국무총리를 하고 대통령을 하고 국회의원을 하는 이 영광된 반토막이 되었지만, 오늘날 이 조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싸우고 피를 흘리고 하는 것입니다. > >내가 [[제3대 국회의원|3대 민의원]][* 헌법상 민참 양원제가 규정된 것은 3대 국회의원 때부터라 민의원이라는 이름은 3대부터 썼다. 그런데 이승만이 참의원 구성을 불허하여 참의원은 헌법상으로만 규정되었을 뿐 실제로는 민의원 하나로만 돌아가는 단원제였다. 참의원이 제대로 수립된 건 이승만이 [[4.19 혁명|4.19]]로 불명예 하야하고 [[허정 과도내각]]이 [[대한민국 제2공화국|2공]]과 [[제5대 국회]]를 수립시킨 후부터다. 그러나 1년도 안 돼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5.16]]을 일으켜 민참 양원은 해산되었으며 [[박정희 정부]]는 단원제로 회귀하여 대한민국 역사상 양원 국회는 5대 국회가 유일하게 되었다.] 적에도 그랬지만, 순국 선열들의 족자를 여기에다가 걸어놓고 이 분들은 실지로 할복자살한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이준(열사)|이준]] 열사, [[민영환|민충정공]], [[강우규]] 선생에 대하여는[* 정작 이들 중 할복한 사람은 민영환 열사 혼자다. 이준 열사에게도 할복자살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오류로 밝혀졌다. 다른 방식의 자살이라는 설과 기존 기록인 병사(病死)설로 나뉜다. 나머지는 다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 정부에 의해 사형 당했다. 윤봉길 의사도 [[훙커우 공원 의거|훙커우 의거]] 직후 자살 시도를 했으나 할복은 아니고 도시락 폭탄으로 자살하려고 했다가 금방 잡혀서 못 했다. 연단에 던졌다고 흔히 알려진 도시락 폭탄은 자살용이었고 실제로 던진 건 물통 폭탄이었다.] 그분의... 나는 여러분에게 국정의 각본이 되어 주십사... 무어냐 그대들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충성하기 전에 국민에게 충성해야 된다. 그대들은 이승만 하나를 맹목적으로 좇으며 나는 하나의 당에 맹목적으로 좇는다. 이승만에 대한 하나의 그것은 4년이나 8년이 지나가면 그만이고, 정당은 해체하면 그만이지만, 위대한 국가의 역사와 번영과 발전이라는 것은 영구불멸할 것이다. 당신네들이 33억 달러를 지금 들여와 대한민국 전 지역에 있는 적산을 전부 미화로 따지면 100억 달러가 돼! 이놈을 합쳐놓은 천문학적 숫자를 불과 몇 놈한테 특혜조치를 해가지고 전기는 25만 키로밖에 안돼. 사탕 공장, 제당 공장, [[나일론]] 공장 같은 것을 해서 이 따위 식으로 만약에 해 먹다가는 우리는 공산당과 도저히 이길 도리가 없다. > >[[서독]]이 폐허를 딛고 다시 부흥하는 모습을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했지만 그것이 아니라 서독 민족은 파괴된 건물을 그대로 두고... 전 구라파 일대의 시장을 획득하며... > >○이상철 부의장: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어요? 시간이 다 되었는데 얼마나 걸리겠어요? > >○김두한 의원(계속): 좀 더...15분... > >-(본 회의 시간 연장에 관한 건)- (오후 1시) > >○이상철 부의장: 김두한 의원 발언이 끝날 때까지 한 15분 걸린다니까 발언이 끝날 때까지... 오늘 시간을 연장 하겠[[읍니다]]. 이의 없으시지요?("예" 하는 이 있음) 여러분이 양해해 주세요. > >- [[1966년]] [[9월 22일]], [[제6대 국회]] 제58회 제14차 국회 본회의 회의록(pp.24~28)에서 발췌. 김두한은 이 사건의 부정, 불의에 대해 열변, 콩밥 에피소드 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별장 같은 감옥에 이미 40여 회 들락날락했는데 또 다시 들어갈 심정'이라는 이야기, 그의 과거 [[반공]]투쟁에 대한 자화자찬, 이승만과 자유당에 대한 이야기, [[존 리드 하지|존 하지]] 때문에 [[오키나와]] 형무소로 갔다는 이야기, 그의 정치적 신념[* 의외라면 의외로 김두한은 북유럽 못지않은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공산당이 못하는걸 남한은 할 수 있다는 맥락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 해외 각국의 사례, 통일 이후 무산대중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허리띠를 졸라 매고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된다는 이야기, 친일파 민족반역자 모리배 집단에 대한 규탄, 이승만과 싸운 이야기, [[박정희]] 정권이 과거 이승만 정권과 뭐가 다르냐는 항변 등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긴 연설에 이상철 부의장이 얼마나 남았냐며 눈치를 주자 김두한은 "좀 더... 15분..."이라고 발언했다. 이상철은 다른 의원들의 양해를 구하고 김두한이 계속 발언을 하도록 허락하였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 때까지만 해도 막무가내인 김두한의 행동을 보면서 다른 국회의원들은 상당히 재밌어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어쨌든 부의장이 허락해 연설은 계속되었는데... >-(특정 재벌 밀수사건에 관한 질문)- (오후 1시 2분) > >○김두한 의원(계속): 이것은 서독 사람이 먹지 않고 기업주와 노동자가 합작을 해 가지고 [[유럽|구라파]] 시장을 획득하는 피와 노력의 대가에 있어서 [[미국]] 다음가는 달러 보유 국가가 되었습니다. 패망한 일본이 서독과 같이 부흥해서 아시아의 [[반공주의|반공]]의 거점을 설정하는 대국가로 등장했고, 우리는 [[삼팔선|38선]]을 지정학적과 전략적 위치에 놓고 북한 공산당보다 남한은 이상된 복지사회국가를 건설해야 머지 않은 장래에 [[유엔]] 총회에서 어떠한 방식이든지간에 통일할 때 우리가 마음 놓고 대다수의 80%의 [[프롤레타리아|무산대중]]의 [[대한민국]]의 운명을 같이 할 수 있는 역사적 시간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아야 되는데, 전부 관료했던 놈,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 하던 놈, 모리배하던 놈 갖다가 놓고, 이 나라의 국가조직을 하면 이 나라는 강도집단이오,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집단인 이상 이것은 애국정당이라고 보고, 애국정권이라고 볼 수 없는 만큼,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와 민족반역자의 도당의 두목으로 규정하여 나는 역사적 국민에게 고발하는 동시에, 이 나라의 헌정을 파괴하고 민족요인을 파괴하는 이승만 정권을 파괴해서 나는 최후에 내 생명이 있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것을 3대 민의원 적에 그 때 자유당 국회의원들이 웃었습니다. > >그러나 [[4.19 혁명|4.19]] 후에 무서운 철퇴를 내려가지고 그 역사에 번복이 왔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5.16 군사정변|5.16 군사혁명]]이 일어나서 새벽 3시에 들어와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강탈하고, 국민의 참정권을 갖다가 박탈하는 그 정권까지는 우리가 용서할 수 있다고 선의로 해석하나, 과거의 자유당 이상으로 부정하고, 부패하고, 독점시켜서 전체 민족의 대다수를 빈곤에 몰아넣고 몇 놈에게 특혜조치를 한다고 하는 과거에 있었던 부정의 역사를 다시 되풀이 했을 때 이것은 건국을... 이승만 대통령의 때와 무엇이 역사가 다르냐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나는 대통령이 여기에 나왔으면 호되게 한 번 따지고 싶지만 국무총리가 여기 대통령을 대리하고 여기 장관이 나와 있으니까 나는 이 사람을 [[내각]]으로 보지 않고 오늘날 3년 몇 개월 동안 부정과 불의를 하는 것을 합리화시켜버린 하나의 [[피고]][* 피고는 [[민사소송]]에서 쓰는 개념이고, 범죄의 혐의를 받는 사람의 유무죄, 혹은 형량을 정하는 [[형사소송]]에서는 피고'인'이라고 한다. 원래 여기서는 맥락상 피고인이 맞지만 김두한이 피고와 피고인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해서 쓸 정도의 지식인은 아니라서 혼동한 것이다. 사실 법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일상에서도 혼동하기 쉬운 말이기도 하다.]로서 오늘 이 시간부터 다루겠습니다. (장내 웃음소리) > >이것이 도적질해 먹는 국민의 모든 재산을 도적질해서 합리화하고... 합리화시키는 이 내각을 규탄하는 국민의…[* 이때쯤 보따리를 꺼내 단상에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의 '사카린'이올시다. 그러니까 이 내각은 고루 고루 맛을 보여야 알지…[* 이 시점에 보따리를 풀어 헤친 것으로 추정된다.] > >'''{{{#904F1C {{{+5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개새끼들아!"를 잘못 기록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국회 속기록에는 '이 새끼들아'로 나온다.] > >(장내 소란) > >("산회 선포해요" 하는 이 있음) > >○이상철 부의장: 오늘은 이로써 산회를 선포합니다. (오후 1시 6분 산회) > >○출석의원 수 157인 >○국무총리 및 출석 [[국무위원]] >○국무총리 [[정일권]] >○경제기획원장관 [[장기영(1916)|장기영]] >○법무부장관 [[민복기]] >○재무부장관 [[김정렴]] > >- [[1966년]] [[9월 22일]], 제6대 국회 제58회 제14차 국회 본회의 회의록(p.28)에서 발췌. 훗날 스포츠 서울과 MBC 히스토리 후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똥물은 김두한이 당시 수행비서였던 채원기를 시켜 [[탑골공원]] 변소에서 퍼 왔다고 한다. 같은 수행비서였던 모세원은 다른 비서인 이세원이 탑골공원에서 퍼온 것이라 증언했다. 김두한 본인이 말하기를 사건 직후 순국 선열의 혼을 기리기 위해 일부러 탑골공원 변소의 똥을 퍼왔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1966년 첫 번째 공판 과정 중에는 비서 2명에게 지시해 자택 변소에서 퍼 왔다고 증언했다. 속기록에는 간단히 '장내 소란'[* 이 '장내 소란'이라는 말은 속기사가 자의적으로 쓴 게 아니라 '''공식적으로 규정된 어휘다.''' 속기를 하다가 회의장이 난장판이 되면 이 단어를 쓰도록 규정된 것. 유명 걸그룹 [[Apink]]의 리더 [[박초롱]]이 2023년 [[국회TV]]에서 찍은 인턴 체험 영상 중 [[https://youtu.be/cQ7_0GhRH0A?t=398|속기사편]]을 보면 알 수 있다. 한편 저 장내 소란과 오물의 정체가 정체다 보니 가끔 저 장내 소란을 [[장염|다른 의미의 장내 소란]]으로 해석하기도 한다.]이라고만 나와 있지만 서술과는 달리 '''[[충격과 공포|당시 국회는 순식간에 인분을 뒤집어 쓴 국무위원들의 비명에, 진동하는 냄새에,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혼비백산한 의원들까지 한 순간에 차마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회의는 즉각 중단됐다. '''그 날 김두한의 정면에 앉아 있던 국무총리 정일권은 [[똥|인분]] 세례에 직격으로 맞은 탓에''' 양복은 물론 시계까지 모두 구리고 묵은 똥냄새가 배어 결국 버렸다고 한다. 또 국회 속기사들도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61111005003|날벼락을 맞았다고 전해졌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LVWIlQ8VQz8, start=221)]}}}|| 당시 [[제6대 국회|국회]]에 참석해 발언했던 [[이만섭]] 전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의 회고. 3분 41초부터 국회 오물 투척 사건에 관한 부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